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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 마지막 숨, 어디에 쓰시렵니까... 호흡기내과 의사가 던진 질문
2017-12-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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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지 영원이라는 두 어둠 사이 잠시 갈라진 틈을 통해 새어나오는 빛과 같은 존재다.”

러시아 출신 미국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에 실린 저 문장엔 인생은 짧고 유한하다는 자명한 진실이 담겨 있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얘기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매일 체감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생사의 문턱을 넘나드는 환자들과 동고동락하는 의사들이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를 펴낸 이낙원(42)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인천 나은병원에서 호흡기내과 과장이자 중환자실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책은 병원의 일상을 전하면서 죽음을 대하는 환자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전하는 에세이다. 크게 3부로 구성됐는데, 가장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는 건 ‘죽음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제목이 붙은 1부다.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영국 시인 에드워드 영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은 시작된다”고 말했지만 생의 최후를 앞둔 환자에게 저런 말은 공허한 위로일 수밖에 없다. 저자가 회진을 할 때면 환자들은 묻고 또 묻는다. “언제쯤 죽는 건가요” “병을 고칠 수 있을까요” “퇴원하면 안 되나요”….

환자 중에는 두려운 감정에 사로잡혀 진종일 까라진 기분으로 병상을 지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의연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책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고집불통 할머니가 대표적이다. 할머니는 천식으로 고생하면서도 흡입기를 활용한 치료는 거부했다. 입안이 헐어서 아프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할머닌 항상 밝았다. 관자놀이엔 반창고를 붙이고 다녔는데, 이유를 물으면 “골치 아파서 그래”라며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죽음 앞에서 성마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예고된 죽음을 입에 올릴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기왕 가는 거 애들 고생시키지 말고 가야지. 조용히 흙 보태러 가야지. (손바닥을 오므려 보이면서) 흙 요만치밖에 안 되는데 그거라도 땅에 보태야제.”

할머니 이야기를 기다랗게 늘어놓은 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살면서 쓸 수 있는 호흡의 양이 정해져 있다면, 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숨의 대부분을 웃는 데 쓰셨다. …에리히 프롬은 수동적인 삶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겪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죽음에도 사는 죽음이 있고, 겪고 마는 죽음이 있는데 할머니는 죽음을 살아내셨다.”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내용이 간단없이 이어진다. 현대인은 거의 대부분 생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보낸다. 죽음이 ‘전문화’되고 철저히 ‘개인화’되면서 죽음의 공포가 과거보다 심해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독자를 숙연하게 만드는 문장도 곳곳에 등장한다. 인간을 밤하늘에 뜬 별에 빗대 표현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별이 소실될 때 중력파를 남기듯 한 인간도 생을 마감할 때 파장을 남긴다. 누군가의 삶과 체취가 변형한 시공간에 익숙해진 주위 사람들의 세포가 고인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병원의 태도를 꼬집는 내용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죽음이 일상화된 병원이지만 아직도 병원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독자들은 의사들이 환자의 고통을 범주화해버리는 일, 쉽게 말하면 “환자니까 겪는 고통”이라는 식으로 환자의 아픔을 일반화해버리는 현실을 비판한 내용에 공감할 것 같다. 저자도 “고통을 범주화하면서 피해 다녔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다음과 같다. “병상에서 만난 그들의 고통은 그저 어떤 환자의 고통이 아니라 ○○○씨의 고통이었다.”

의사가 내놓은 에세이 중 최근 몇 년 간 가장 관심을 모은 저작은 지난해 출간된 ‘숨결이 바람될 때’일 것이다. 책은 폐암으로 투병하다가 서른여섯 살 나이에 세상을 뜬 미국 의사의 근사한 자서전이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숨결이…’에 적힌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갈음할 수 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국민일보 -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